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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셋(Rule-set)을 함께 만들어 온 시간

구경모
룰 셋(Rule-set)을 함께 만들어 온 시간

월독프; 월급 독립 프로젝트

  언젠가 월급 없이도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말하자면 일종의 노후준비.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던 몇 명이 히네스 작가의 주선으로 강남의 한 세미나실에 모였다. 미국 주식을 어떻게 배분해 투자해야 스스로 자본이 굴러가는지, n8n(다양한 앱, 데이터베이스, AI 모델을 코딩 없이 시각적인 인터페이스로 연결해 복잡한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하는 오픈소스 기반 플랫폼) 자동화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새로 시작한 온라인 판매사업의 매출은 어떻게 되는지, LLM 도구들은 업무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한달에 한 번 많을 때는 두세 번씩 나누는 자리였다. 

  뭔가 큰 뜻이 있었다기 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뜻깊었는데, 자리가 깊어지면서, 게임 기획자가 AI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식, AX 컨설턴트가 고객의 공급망 문제를 풀어내는 이야기, 기업 투자자가 AI로 각 기업을 들여다보는 고민들을 듣다보니, 나는 나름 공학박사 타이틀을 달고 정작 그들이 사용하는 AI 모델을 만드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AI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훨씬 과감하고 적극적임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모델의 구조를 고민하는 동안, 적어도 이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었다. 매번 배움의 폭이, 깊이가 너무 넓고 깊어서 어느새 나는 출석률이 가장 높은 멤버가 되어 있었다.


이거,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깝지 않아?

  업계 분야도, AI를 사용하는 방식도 다르고 기수도 나이도 다른 열 명이,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이야기 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생각해보면 세 번째 모임때 까지는 서로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자기소개 조차 안하고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매번 두어시간씩 각자의 자리에서 통과하며 얻은 것들을 단지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서로와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좋은 이야기들이 녹음 되고, 그것들이 정리 되어 콘텐츠가 되고, 세상에 공유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 머릿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순탄했다고는 못 하겠다. 2025년 중반, 각자 원고를 완성하고 출판사와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멈췄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각자의 글의 완성도가 오히려 묶어놓고 보니 누구를 위한 책인지 흐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었고, 현업자 열 명의 실명과 회사를 모두 공개하는 일의 무게도 생각보다 복잡했다. 퇴근 후에 쓰고 자주 모여 다듬은 원고들이 허사가 되는 것 같아서 한동안 힘이 빠지기도 했다.

  지나고보니 그 과정 조차 필요한 과정이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는 열심이었지만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에는 엄격하지 못했다. 김기태 작가의 제안으로 원고를 고치는 대신 기획을 처음부터 다시했다. “도구가 아니라 원칙을 말하자”, “6개월 뒤 낡아버릴 팁이 아니라 5년 후에도 읽히는 기준을 담자”. 툴 킷(Tool-Kit)이 아닌 ‘룰 셋 (Rule-Set)’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나왔다.


열 명이 만든 열 가지 원칙

  그렇게 완성된 책은 4개 파트, 10개의 원칙으로 짜여 있다. 

  1부 ‘불안의 종식과 무기화’는 AI 시대에 누구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감정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원칙은 박창덕 작가의 ‘경험 레버리지의 원칙’이다. 플랜트산업계에서 23년을 재직 후 최근 온라인 전자상거래 소매업 ‘플랜티’를 시작하면서 느낀 불안과 이를 이겨낸 경험을 이야기 한다. 오래 축적된 경험이 AI를 만났을 때 강력한 레버리지(지렛대)가 된 경험, 단순 지식 습득을 넘어 그 경험을 통해 AI의 답을 가려내고, 이를 판단·보호·확장의 도구로 삼아 가치를 증폭해 나가는 이야기다. 두 번째 원칙은 김소희 작가의 ‘전원 기획자의 원칙’이다. 기술은 변해도 사람의 욕망은 변하지 않으며, 모든 구성원은 기술에 끌려다니는 대신, 사용자의 맥락을 읽고 '의도'를 설계하는 기획자의 마인드셋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 ‘실행 검증의 원칙’은 아인; AI-IN 작가의 원칙이다. 완벽한 준비보다 50점짜리 결과라도 먼저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확신은 공부가 아닌 부딪히는 경험(실행 데이터)에서 나오고, 기술은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경험을 이야기 한다. 아인 작가는 책을 쓰고 출판하는 과정 중에도 말보다 본인의 행동으로 이 주장을 뒷받침했다. 텀블벅에 ‘20년차 워킹맘의 칼퇴 치트키는 AI’를 전자책으로 출판하고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2부 ‘코어시스템과 철학의 구축’은 중심 축을 세우는 이 책의 무게 중심이다. 

  네 번재 원칙은 AI를 단순히 '시키는 도구'로만 쓰지 말고, 자신의 맥락을 입력해 AI와 함께 사고를 발전시키는 '공진화(共進化)' 루프를 만들어 지적 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김기태 작가의 ‘생각의 원칙’이다. AI를 요술지팡이가 아니라 ‘내 사고를 담는 거푸집’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쓴 제 5원칙, ‘지능적 신뢰의 원칙’은 막연한 불안(FOMO)에서 벗어나려면 기술의 뼈대와 작동 원리를 이해해야 하며 구조를 알 때 생기는 '지능적 신뢰'를 바탕으로 무엇을 AI에게 맡길지 설계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대부분 AI를 현장에 적용하면서의 실패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뢰의 눈금이 잘못 맞춰져서 생긴 실패였기에, 이해에 기반해 믿을 것과 의심할 것을 구분하는 힘을 말하고 싶었다. 개발자로서가 아니라 AI와 함께 일해야 하는 한사람의 실무자로. 여섯 번재 ‘불변식별의 원칙’은 김태형 작가의 이야기다. 카카오그룹의 기술윤리위원인 그가 AI를 도입하기 전, 조직에서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할 '절대 기준'과 기술윤리를 먼저 세워야한다는 점을 설명하며 기준 없는 기술은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위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3부 ‘현장과 실무를 재설계하는 원칙’은 실제 일하는 방식으로 내려온다. 

  일곱 번째 원칙인, ‘워크플로우 재설계의 원칙’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AI 전환 절대 공식’을 집필한 김건우 작가의 이야기로, AX는 기존 업무에 AI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제로 베이스에서 AI를 전제로 업무 흐름을 다시 구성해야 하며 이는 단순 자동화가 아닌 프로세스의 근본적인 리엔지니어링 과정임을 강조한다. 여덟 번째 원칙은 히네스 작가의 ‘데이터 브리지의 원칙’으로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기반으로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암묵지(정의·문맥·관계)를 AI가 이해할 수 있는 명시적 구조(지식 그래프)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며, 데이터와 AI 사이의 절벽을 잇는 다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아홉 번재 원칙은 정한직 작가의 ‘솔로프리너 구현의 원칙’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AI의 생산성에 도움받아 혼자 사업을 운영하던 초기부터 지금의 모멘트큐브로 성장시키기 까지의 과정, 특히 인간의 맥락으로 최종 퀄리티 20%를 채워 한 사람이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 '솔로프리너'로 진화하여 생산성의 선순환에 올라탄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이 책 모든 여정의 종착점인, 마지막 4부 ‘궁극의 결과와 자본’에 포함된 마지막 열 번째 원칙인 변장원 작가의 ‘자본 증명의 원칙’은 AI 활용의 최종 목적지는 효율이 아닌 수익이며 최소 수익 가능 제품(MMP)을 통해 실질적인 자본 가치를 증명하고, 스스로 시스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 책을 마무리 한다. 

비 오는 여의도의 밤

  2026년 7월 14일 저녁, 여의도 파크원타워2 46층. 비바람이 많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50명이 넘는 분들이 함께 모여 ‘룰 셋(Rule-Set)’의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함께 했다. 젖은 우산을 접으며 들어온 많은 얼굴들을 마주하며 말로 다 하기 어려운 감사함을 느꼈다. 

  행사는 2부로 진행됐다. 1부는 성균관대학교 IMBA 김우진 교수님의 축사로 문을 열었다. 이 책의 가능성을 믿어준 출판사 더테라스 백유창 대표님의 추천사가 이어졌고, 46층의 멋진 공간을 내어주고 행사를 지원해준 티오더 권성택 대표님이 서비스를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다. 1부의 마지막은 제7원칙 '워크플로우 재설계'의 저자, 김건우 작가의 세미나. 책의 원칙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미리 맛보는 자리였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갔다. 10가지 원칙을 세 파트로 나눠 저자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원칙을 소개하고 청중의 질문을 받았다. 나도 무대에 서서 '지능적 신뢰'를 이야기했다. 발표 자체보다 기억에 남는 건 질문들이었다. 각자의 현장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AI와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의 질문. 몇 년 전 우리가 모임에서 서로에게 던지던 질문들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 북콘서트 현장은 https://youtu.be/IRihuJUZ3lU 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

  무대 위에서 새삼 확인했다. 이 책의 힘은 열 명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열 명이 ‘다르다’는 데 있다는 것. 한 사람의 통찰은 한 방향을 비추지만 열 개의 현장은 지형을 보여준다. ‘월독프’로 모인 그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함께 해준 사람들의 생각도 제각각이었다. 어떤이는 업무에서의 궁금함을, 어떤 이는 AI의 사용 방법을, 또 어떤이는 아이들의 진로를 걱정했고, 또 누군가는 우리처럼 책을 쓰고 본인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자리에 함께했다.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룰셋은 통제를 위한 언어가 아니라, 폭풍처럼 쏟아지는 기술 한복판에서 나를 중심에 세우는 언어라고.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그랬다. 매일 새로운 모델이 쏟아지고 어제의 정답이 오늘 낡아버리는 시대에, 우리는 매달 모여 서로에게 물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건 뭔데? 서로의 현장에서 확인된 건 뭔데?

  이제 그 질문을, 그 다양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한다. 강의와 워크숍, 유튜브와 팟캐스트 같은 콘텐츠,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들.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와 새로운 현장의 사례들이 그 여정을 채울 것이다.

  우리에게 이 책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월급으로부터의 독립을 이야기하던 모임이 어느새 기술 앞에서의 주체성을 이야기하는 모임이 됐다. 생각해보면 같은 이야기다. 무엇에도 끌려가지 않고, 내 발로 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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